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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영화 <1987> 리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뜨거운 6월의 진실

by 돈블로머 2025. 4. 14.

줄거리

영화 <1987>은 단순한 시대극이 아니다. 이는 한국 현대사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위대한 순간을 그린 진실한 기록이자, 민주주의를 향한 민중의 뜨거운 외침을 담은 드라마다. 배경은 제목 그대로 1987년. 군부 정권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대한민국은 비밀경찰의 폭력, 언론 통제, 시민의 자유 박탈이 일상처럼 이어지던 시기였다.

그 해 1월, 서울대생 박종철이 경찰 조사 도중 고문으로 사망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당국은 그의 죽음을 심장마비로 덮으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의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검사, 기자, 교도관, 학생, 신부 등 각자의 위치에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이 용기를 내고, 조용히 퍼지던 저항은 점차 거대한 함성으로 커진다. 영화는 이들이 만들어낸 변화의 순간을 교차하는 시선으로 촘촘히 보여준다.

<1987>은 단일 주인공이 없다. 그 대신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사람들의 시점이 엮여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그려진다. 덕분에 영화는 단순한 정치 영화가 아닌, 인간 드라마로서도 큰 감동을 준다. 정권에 맞선 이들의 작은 용기들이 모여 결국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는 여정, 그 중심에 영화 <1987>이 있다.

 

민주주의는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 — 양심을 지킨 사람들

<1987>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은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선택’이다.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검사 최환(하정우 분)은 박종철 사망 사건을 덮으라는 상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그는 수사에 집착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저 법을 따르겠다는 원칙, 정의감, 그리고 "죽음은 숨길 수 없다"는 소신이 그를 움직인다. 그의 조그만 ‘거절’은 연쇄 반응을 불러온다. 진실을 묻으려는 권력 앞에서, 신문사 기자 윤상삼(이희준 분), 교도관 한병용(유해진 분), 신부 최준열(문성근 분)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실을 세상에 전하려 애쓴다.

이 영화는 ‘영웅’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그보다는 사회의 구석구석에서 자신의 양심을 따르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담하지만 강렬하게 보여준다. ‘우리 중 누군가는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메시지는 1987년뿐 아니라 지금을 살아가는 관객에게도 똑같이 울림을 준다. 정의로운 선택은 거창하지 않아도 되며, 그 용기는 결국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교차되는 시선, 입체적인 구성 — 시대를 담아낸 연출의 힘

감독 장준환은 <1987>을 단순한 실화 재현 드라마가 아닌, 영화적 완성도가 뛰어난 ‘드라마틱한 기록물’로 완성해낸다. 특히 인물의 시점을 바꾸며 전개하는 연출이 눈에 띈다. 경찰, 기자, 검사, 학생, 교도관, 신부 등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등장시켜 이 거대한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이로 인해 영화는 다큐멘터리적 사실성과 극적인 몰입감을 동시에 잡는다.

또한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 구성은 매우 설득력 있다. 박종철을 마지막으로 면회한 대학생 연희(김태리 분)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관객이 당시 시대를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감정의 통로 역할을 한다. 관객은 연희의 눈을 통해 사회의 부조리를 목격하고, 그녀의 각성을 따라 6월 항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함께 휩쓸리게 된다.

음악, 미장센, 시대 재현 등도 돋보인다. 1980년대 후반의 거리, 의상, 분위기까지 사실적으로 구현된 배경은 관객을 자연스럽게 그 시대로 데려간다. 다큐멘터리처럼 차갑지도, 과장된 감정으로 무겁지도 않다. 오히려 그 시대의 공기와 사람의 체온을 느끼게 만드는 연출이 <1987>의 진정한 강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질문 — 왜 우리는 이 영화를 봐야 하나

<1987>은 과거를 재조명하지만, 동시에 현재를 향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장면 중 하나는 학생들의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함성을 지르며 도로를 가득 메우는 장면이다. 이는 단순한 역사 재현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잊지 말아야 할 가치—민주주의, 표현의 자유, 저항의 의미—를 몸소 보여주는 상징이다.

이 영화는 단순히 ‘옛날 일’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여전히 언론 통제, 권력의 폭력, 사회의 부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즉, <1987>은 과거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교훈을 던지는 작품이다. 특히, 시대가 위협받을 때 가장 먼저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은 ‘진실’이며, 그 진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언제나 이어진다는 메시지는 시대를 초월한 울림을 준다.

그런 점에서 <1987>은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기억’이며, 우리가 반드시 회상하고 기록해야 할 ‘역사’다. 관객으로서 이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가 바로 그 기억의 일부가 된다.

 

주요 인물 분석: 캐릭터를 통해 본 시대의 초상

하정우가 연기한 최환 검사 - 실제 사건의 핵심 인물인 ‘안상수 검사’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그는 고문치사 사건을 조작하라는 상부의 압박을 받지만, 이를 거부한다. 그의 선택은 어떤 대의명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단지 "죽음을 숨기면 안 된다",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직업적 윤리의식, 그리고 인간적인 감각에서 출발한다. 하정우는 이 복합적인 캐릭터를 과장 없이 자연스럽게 소화하면서도, 내면의 갈등과 책임감을 섬세하게 드러낸다.

관객은 그의 모습을 보며 깨닫게 된다. 어떤 거대한 정의감보다 ‘작은 원칙’을 지키려는 용기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시대를 바꾸는 것은 반드시 영웅이 아니라, ‘그냥 할 일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뚜렷이 전달된다.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장 - 치안본부 대공수사처장으로 등장한다. 그가 연기한 인물은 ‘박처장’이라는 가명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로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책임자였던 박처원 치안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김윤석은 이 역할을 단순한 악당처럼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왜곡된 충성심’, ‘체제에 대한 맹목적 집착’이 낳은 괴물처럼 그려낸다.

박처장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국가를 위한 것이라 믿고, 사람을 고문하고 진실을 묻으면서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체제를 지키기 위해선 ‘희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윤석은 그 이중성과 냉정함을 완벽하게 표현하며, ‘권력의 얼굴’을 상징하는 인물로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유해진이 연기한 교도관 한병용 - 권력의 하부 구조에서 일하지만, 진실을 목격하고 외면하지 못한다. 그는 사건의 진실을 기자에게 알리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행동으로 변화의 씨앗이 된다. 유해진은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연기로 그 인물을 친숙하고도 깊이 있게 그려낸다. 특히 조용히 진실을 전하려는 그의 모습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간적인 장면 중 하나다.

한편, 김태리가 연기한 대학생 연희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이 영화의 정서적 중심이다. 그녀는 처음엔 정치에 무관심하지만, 사건을 접하고 고민하면서 점점 변해간다. 이는 바로 많은 시민들의 심리와도 닮아 있다. 그녀의 변화는 곧 이 시대를 살아간 수많은 ‘우리 모두의 변화’를 상징한다.

 

역사적 배경과 실제 사건 정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 1987년 1월 14일,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재학 중이던 박종철 군은 경찰에 연행된 후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다. 경찰은 이를 ‘심장마비’라고 발표했지만, 서울대 학생들과 언론은 이에 강하게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진실은 드러났고, 박종철 군이 물고문 도중 사망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이 사건은 당시 전두환 정권의 인권 탄압과 권력 남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고, 전국적인 분노를 촉발시킨다.

6월 항쟁과 직선제 개헌 - 박종철 사건 이후, 정권은 ‘선거인단 간접 선거’를 강행하려 하지만, 국민적 반발은 점점 거세진다.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며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묵살하자, 시민과 학생들이 들고일어난다. 그렇게 시작된 6월 항쟁은 전국 22개 도시에서 약 500만 명이 참여한, 한국 민주주의의 분수령이었다.

결국 1987년 6월 29일,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는 직선제 개헌과 민주화 조치를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하며 항쟁은 결실을 맺게 된다. 영화 <1987>은 이 격동의 시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영화 <1987>의 사회적 파급력

<1987>은 단순한 흥행 영화가 아니다. 개봉 당시 약 72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대화’를 이끌어냈다는 점이다. 영화를 본 수많은 관객들은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박종철, 이한열 등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다시 기억하기 시작했다.

또한 청소년, 대학생들이 영화 관람 후 자발적으로 토론회를 열고,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많은 학교에서는 이 영화를 ‘시민교육’의 자료로 삼았고, 여러 기업과 지자체는 단체 관람을 진행했다. 어떤 의미에선 이 영화는 2017~2018년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적 공기를 다시 환기시키는 ‘문화적 민주주의 운동’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시대를 넘는 교훈: <1987>이 던지는 오늘의 질문

오늘날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을까? 누군가는 지금의 민주주의가 당연하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1987>은 묻는다. “당연한 것이 정말 당연한가?” 그리고 “당신이 그 시대에 살았다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이 영화는 영웅을 찾지 않는다. 대신 모든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느 쪽에 설 것인가?"

박종철과 이한열의 이름은 이제 단지 역사 교과서에 남은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이름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진실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곧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영화

<1987>은 뛰어난 영화이기 이전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야기다. 이것은 누군가의 아픈 가족사이기도 하고, 시민 전체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단 한 번이라도 진심으로 본 사람이라면, 더 이상 ‘침묵’하거나 ‘무관심’할 수 없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결코 공짜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진실을 단 129분 동안 우리에게 절실하게 알려준다. 시대가 바뀌어도, <1987>이 가진 메시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오늘 하루, 다시 이 영화를 떠올려보자. 그리고 조용히 되뇌어보자. "진실은 묻히지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드러난다."

 

총평

영화 <1987>은 한국 현대사 속 가장 중요한 민주화 운동을 섬세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단지 교과서 속 사건을 그린 것이 아닌, 그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고민, 분노, 용기, 그리고 희망을 생생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다. 감동과 분노, 그리고 깊은 울림이 교차하는 이 영화는 “우리가 왜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든다.

출중한 연출력, 묵직한 메시지, 배우들의 열연, 사실적인 시대 고증까지 모든 면에서 완성도 높은 작품이며, 단순히 영화로서의 재미를 넘어서 관객의 삶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시민 교육의 장’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지금처럼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혼란이 반복되는 시대에 <1987>은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지금도 살아 숨 쉬는 우리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울림의 작품이다. 잊지 말자. 민주주의는, 결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