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 ‘로즈버드’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퍼즐 같은 여정
1941년, 플로리다의 거대한 저택 '제나두'에서 한 노인이 숨을 거둔다. 그는 바로 미국의 언론 제국을 건설한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Charles Foster Kane)이다. 케인의 마지막 말은 단 하나, “로즈버드(Rosebud).” 아무도 이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언론계는 혼란에 빠진다.
이를 계기로 한 기자 제리 톰슨은 케인의 삶을 파헤치기 위해 그의 주변 인물들을 인터뷰하며 조사를 시작한다. 케인의 유년 시절을 알았던 은행가부터 그의 첫 아내, 정치 동지, 두 번째 아내였던 가수 수잔 알렉산더까지. 톰슨은 퍼즐처럼 흩어진 증언을 통해 케인의 인생을 되짚어간다.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에서 자라던 케인은 우연한 계기로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고, 곧 언론계로 진출해 선도적인 신문을 창간하며 성공가도를 달린다. 하지만 그는 이상주의적인 면모와 동시에 독선적인 권력욕을 드러내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점차 잃어간다. 결국 그는 거대한 성 같은 저택에서 외롭게 죽음을 맞는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관객은 ‘로즈버드’가 케인이 어린 시절 타던 눈썰매의 이름이었음을 알게 되며, 그 한마디 속에 담긴 인간적 외로움과 상실의 무게를 절감한다.
영화 기술의 혁명 – 1940년대에 나온 작품이라 믿기 어려운 완성도
<시민 케인>은 단순한 고전이 아니다. 이 영화는 영화 문법을 재창조한 혁신의 결정체다. 특히 촬영 기법에서 '딥 포커스(Deep Focus)'의 전면적인 활용은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전경, 중경, 배경이 모두 선명하게 초점을 유지하며 동시에 여러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을 한 화면에 담아낼 수 있었다. 이 기법은 그 자체로 관객에게 시각적 긴장감과 해석의 자유를 선사하며, 이후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또한, 카메라 앵글 역시 일반적인 시선에서 벗어난 구도가 많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는 앵글은 인물의 위압감을 강조하고,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앵글은 인물의 고립과 무기력을 부각한다. 이는 단지 시각적인 실험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표현주의적 기법이라 할 수 있다. 오슨 웰스는 당시 20대의 신예 감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실험을 과감히 시도하며 영화 예술의 미래를 열었다.
편집 또한 파격적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플래시백 구조, 인물의 심리를 시각화하는 몽타주 구성, 빠르고 감각적인 전환은 오늘날에도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다. <시민 케인>은 단순한 이야기 전달이 아니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고민의 결과물이다.
인물의 심리와 사회비판 – 권력은 무엇을 잃게 만드는가?
찰스 포스터 케인은 성공한 인물인가, 실패한 인물인가? 영화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지만, 다양한 관점을 통해 그가 얻은 것과 잃은 것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는 부와 명예, 영향력을 가졌지만, 결국 사랑을 잃고 외로움 속에 죽음을 맞는다.
영화는 케인을 단지 개인의 비극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삶을 통해 20세기 초 미국 사회의 자본주의, 언론 권력, 정치적 야망 등의 주제를 비판적으로 조망한다. 케인은 한때 이상주의자로서 '진실'을 위해 언론을 시작했지만, 점차 자신의 욕망과 이미지 관리에 집착하며 진실에서 멀어진다. 이는 곧 미디어가 어떻게 조작되고, 권력이 어떻게 인간을 변질시키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즈버드’라는 마지막 말은 그가 그토록 원했던 권력보다도,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더 소중했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거대한 제국과 저택을 소유했지만, 그 안에서 그는 가장 인간적인 것을 잃었다. 오슨 웰스는 이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현대 영화에 끼친 영향 – 모든 영화인들의 바이블
영화계에는 흔히 이런 말이 있다. “<시민 케인>을 본 적 없더라도, <시민 케인>의 영향을 받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제로 <시민 케인>은 이후 모든 영화의 문법에 영향을 끼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 마틴 스코세이지의 <택시 드라이버>,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 등 다양한 장르와 시대의 명작들이 <시민 케인>의 내러티브 구조, 시각 연출, 캐릭터 구축 방식을 계승하거나 변주했다. 심지어 애니메이션 <시몬의 고양이>나 <심슨 가족> 같은 대중 문화 속에서도 <시민 케인>의 패러디는 자주 등장할 만큼, 이 영화는 영화인들의 ‘공용 언어’가 되었다.
또한, '플래시백 구조'나 '조각난 진실의 조합' 같은 서사적 기법은 현대 서스펜스, 심리 드라마, 미스터리 장르에서 기본 요소로 자리잡았다. 케인의 죽음에서 출발해 인물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식은 오늘날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나 다큐멘터리의 서사 구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시민 케인>은 단지 한 편의 걸작이 아니라, 영화 예술의 '기준점'이자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총평 – “로즈버드”라는 한마디에 담긴 인생의 비밀
<시민 케인>은 시대를 초월하는 영화다. 1941년에 제작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으며 오히려 현대 영화보다 더 앞선 연출력을 보여준다. 오슨 웰스는 이 한 작품으로 영화사의 판도를 바꾸었고, <시민 케인>은 지금까지도 수많은 평론가와 감독들이 ‘역대 최고의 영화’로 손꼽는다.
이 작품의 위대함은 단지 기술적인 측면이나 혁신성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사유와 통찰에 있다. 권력, 욕망, 상실, 고독, 기억… 이 모든 것을 단 한 인물, 케인의 삶을 통해 고스란히 녹여낸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야 우리는 '로즈버드'라는 단어 하나가 얼마나 큰 무게를 지니는지를 깨닫게 된다.
<시민 케인>은 단순히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니라, '되새기며 살아가야 할 영화'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앞으로도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이어질 것이다.
'영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황금광 시대 - 찰리 채플린의 황금 같은 웃음과 감동, 인간의 마음 (1) | 2025.04.15 |
---|---|
카사블랑카 - 고전, 험프리 보가트, 헐리우드 황금기 대표, 시대적 맥락, 시간 초월 (3) | 2025.04.15 |
대부 1(The Godfather Part I) – 명작의 품격과 세대를 초월한 유산 (2) | 2025.04.14 |
영화 <1987> 리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뜨거운 6월의 진실 (0) | 2025.04.14 |
부산행 – 재난 속에서 피어난 인간성의 역설, 좀비, 캐릭터 중심 연출 (1) | 202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