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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아이 캔 스피크 - 줄거리와 리뷰: 진심이 통하는 언어,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역사

by 돈블로머 2025. 4. 11.

줄거리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문제를 다룬 휴먼 드라마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감동적인 이야기다. 김현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나문희와 이제훈이 각각 주연을 맡았다. 영화는 평범한 일상 속 유쾌한 갈등으로 시작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메시지를 품은 묵직한 이야기로 변모한다. 특히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감정에만 의존하지 않고, 잔잔하고 따뜻하게 흘러간다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얻었다.

주인공 나옥분(나문희)은 구청의 민원실을 매일같이 드나드는 일명 ‘민원왕’이다. 그녀는 작은 문제도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 집요함과 정열로 유명하지만, 그런 그녀에게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여러 학원과 강사를 전전하지만, 매번 번번이 실패하기 일쑤다. 그 이유는 단순한 외국어 학습이 아니라, 그녀의 가슴 속 깊은 이야기를 세상에 직접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편 구청에 새로 발령된 공무원 박민재(이제훈)는 원칙과 매뉴얼을 중시하는 냉철한 성격의 인물이다. 처음에는 민원인 옥분에게 당황하지만, 점차 그녀의 진심을 알아가며 서서히 마음을 연다. 그렇게 둘은 ‘영어 과외’라는 예기치 않은 연결고리로 서로의 삶에 스며들게 된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자신이 겪은 끔찍한 과거, 위안부 피해자였던 그 시간을 직접 영어로 증언하고 싶다는 소망 때문이다. 그녀는 더 이상 누군가의 통역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로 진실을 알리고 싶어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한 웃음과 감동을 넘어,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한 장면을 품고 있다. 영화의 제목처럼, “나는 말할 수 있다”는 그 한 마디에 담긴 진심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나문희의 진심 어린 연기, 위안부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다

<아이 캔 스피크>의 가장 큰 감동은 바로 배우 나문희의 열연에서 나온다. 그녀는 단순한 할머니 캐릭터를 넘어서,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온몸으로 표현해낸다. 초반부의 잔소리 많고 유쾌한 민원인에서, 후반부 자신의 과거를 고백하는 여성 인권운동가로 변모해가는 과정은 한 편의 서사 그 자체다. 나문희의 연기는 과장되지 않고 진정성으로 가득 차 있으며, 특히 미국 청문회에서 영어로 증언하는 장면은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명장면 중 하나다.

나옥분 캐릭터는 실제 위안부 피해자이자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직접 영어로 증언했던 故 이용수 할머니를 모티브로 삼았다. 영화는 그녀의 삶과 목소리를 픽션으로 재구성하면서, 관객에게 위안부 문제를 일회성 감정 소모가 아닌 지속적으로 기억해야 할 역사적 사실로 각인시킨다. 이 점에서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한 휴먼 드라마의 틀을 넘어, 역사 교육의 기능도 수행하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고통의 과거를 묘사하는 데 있어 자극적인 연출을 삼가고,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로 인해 영화는 더욱 진정성을 가지며, 그 진심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나문희는 이 작품을 통해 수많은 관객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노년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이정표가 되었다.

 

세대 간의 간극을 잇는 ‘영어 과외’, 가장 인간적인 연대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히 위안부 문제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대 간의 소통과 이해라는 또 다른 주제를 함께 풀어낸다. 영화의 큰 줄기는 ‘민원 할머니’와 ‘공무원 청년’이 만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이다. 옥분은 민원 하나하나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구청의 골칫덩어리이고, 민재는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는 정석적인 공무원이다. 전혀 접점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 ‘영어 과외’라는 특이한 상황으로 묶이게 되면서, 영화는 코믹하면서도 따뜻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처음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겪지만, 시간이 지나며 서로의 사정을 알아가게 된다. 민재는 단순히 ‘귀찮은 민원인’이었던 옥분이 어떤 상처와 목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를 알게 되고, 옥분 역시 민재가 가진 인간적인 고뇌와 책임감을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은 단지 영화적 장치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세대를 뛰어넘는 연대는 이 영화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다.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다고 해서 서로를 쉽게 재단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결국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민재가 결국 영어 과외를 진심으로 대하고, 옥분의 청문회 출장을 동행하는 장면은 바로 이런 연대의 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이 캔 스피크>는 ‘이해’라는 말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는지를 실감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I Can Speak” –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용기와 진실

<아이 캔 스피크>는 단순히 영어 공부를 다룬 코미디가 아니다. 이 영화의 제목인 “I Can Speak”는 단순한 언어 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은 수십 년간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의 고통과 침묵을 깨고, 진실을 직접 말하겠다는 용기 있는 선언이다.

영화는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던 역사적 고통을 직접적으로 재현하진 않지만, 그 아픔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 고통을 넘어서 용기를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었는가?”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영어로 자신이 겪은 참혹한 진실을 증언하는 옥분의 모습은, 단지 영화 속 한 장면이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진심어린 외침이다.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말할 수 있다는 건 단지 영어를 배운 것 이상의 의미다. 그것은 한 개인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증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역사의 왜곡에 맞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관객에게 단순히 눈물 한 줄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 스스로가 옥분의 외침을 통해 역사적 책임과 기억의 중요성에 대해 자각하도록 만든다. “말할 수 있는 용기”, 그 하나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총평: 따뜻한 웃음 뒤에 숨겨진 강한 메시지

<아이 캔 스피크>는 웃음과 감동, 그리고 역사를 한 편의 드라마로 녹여낸 훌륭한 작품이다. 나문희의 깊은 연기와 이제훈의 섬세한 감정선, 두 배우가 만들어낸 케미는 보는 내내 관객의 몰입을 유도한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무거운 역사를 다루면서도 그 서사를 잔잔하게, 그러나 강력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는 역사적 과제이며, 이 영화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운다. 또한, <아이 캔 스피크>는 세대 간의 소통과 인간적인 연대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치유와 이해가 어떻게 시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휴먼 드라마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들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과거를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한 오늘날, <아이 캔 스피크>는 우리가 왜 그 기억을 놓아서는 안 되는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옥분이 “I can speak”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목소리를 그냥 지나쳐선 안 된다. 그것은 단순한 대사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외쳐야 할 시대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