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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범죄와의 전쟁 - 줄거리와 해석: 권력과 욕망이 교차하는 시대의 초상

by 돈블로머 2025. 4. 9.

줄거리

윤종빈 감독의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2012년에 개봉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한국 범죄 영화의 대표작이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가 격동의 시기를 지나던 그 시점에서, 이 영화는 한 인물의 부침을 통해 시대의 욕망과 부패를 날카롭게 조명한다.

영화의 주인공 최익현(최민식)은 부산 세관 공무원으로, 위에서 치고 아래에 굽실대는 전형적인 ‘생존형’ 인물이다. 그는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챙기다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조폭 출신의 최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고 조폭과 정계의 브로커 역할을 자처한다. “살아있네~”라는 유행어와 함께, 그는 권력의 냄새를 맡고 빠르게 상류 세계에 접근하려 한다.

최익현은 형배와의 친분을 내세워 조직 내부의 갈등을 조정하고, 정치인들과의 뒷거래를 통해 영향력을 넓혀간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노태우 정부의 ‘범죄와의 전쟁’ 선언 이후, 분위기는 급변한다. 검찰이 조폭과의 연줄을 가진 공직자와 인물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익현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그가 손을 잡았던 조직은 더 이상 그를 보호해주지 않고, 형배마저도 점점 그를 버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최익현이라는 한 인간의 몰락과 함께, 1980~90년대 대한민국의 권력 구조와 부패, 조폭과 정치가 얽힌 혼란의 시대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최익현 캐릭터가 보여주는 시대의 얼굴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핵심은 단연코 주인공 최익현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영리하거나 강인한 캐릭터가 아니다. 오히려 시대에 영합하고 눈치를 보며,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권력과 비리, 연줄 문화의 실체를 이 인물 하나로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최민식은 이 역할을 통해 소시민적인 비굴함과 순간적인 영악함, 그리고 몰락하는 인간의 비참함을 놀라울 정도로 사실감 있게 표현한다. 그가 무언가를 치밀하게 계획하기보다는, 우연한 기회에 올라탄 권력의 흐름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는 방식은 당시 한국 사회의 여러 인물상과 맞닿아 있다. 특히 그의 대사와 억양, 부산 사투리로 표현되는 유머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더하며 관객의 몰입을 이끈다.

그는 ‘나쁜 놈’이면서도, 완전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왜냐하면 그는 이 시대, 이 사회의 부산물이고, 관객 자신 역시 어느 정도 그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영화 이상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조폭과 권력의 유착: 한국 사회의 은밀한 초상

<범죄와의 전쟁>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갱스터 무비의 전형을 따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 영화는 조직폭력배들의 싸움과 범죄보다는, 그들이 권력과 손을 잡고 어떻게 사회 속에 스며드는지를 보여준다. 조폭과 정치인, 검찰, 경찰이 서로에게 필요에 의해 얽히고설키는 이 연결 고리는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반복된 구조다.

영화 속 최형배는 단순한 조폭이 아니다. 그는 세련되고, 냉철하며, 정계와의 접촉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유형의 범죄자다. 이 캐릭터는 조직폭력배가 어떻게 사회의 일원처럼 위장하고, 어떻게 권력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하정우는 이 인물을 통해 전통적인 ‘깡패’의 이미지를 넘어, 마치 기업가나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현대적 범죄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이어지는 부패와 유착의 문제를 다룬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캠페인이 실은 또 다른 정치적 도구였다는 점은, 당시 정부의 이미지 세탁과 권력 싸움의 본질을 꿰뚫는다. 결국 잡히는 쪽은 줄을 잘못 선 사람들뿐이다. 이 냉혹한 현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법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연출, 미장센, 음악이 완성한 리얼리즘

윤종빈 감독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1980~90년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재현해냈다. 당시의 거리, 자동차, 복장, 전화기, 정치 뉴스까지 디테일하게 복원된 시대적 배경은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관객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술자리 문화, 사무실 풍경, 형사들의 태도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그 시대로 빨려 들어간다.

카메라는 종종 흔들리고, 클로즈업보다는 롱테이크를 많이 활용하여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이런 촬영 기법은 인물들의 감정과 사건의 사실성을 극대화시키며, 관객이 마치 그 자리에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또한 영화의 색감은 전체적으로 탁하고 어두우며, 세기말적인 불안감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음악 또한 영화의 감정선을 따라 절묘하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긴장감 넘치는 음악은 극의 감정 폭발을 견인하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단순한 ‘시대극’ 이상의 완성도를 만들어낸다.

 

총평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한국 사회가 겪어온 권력의 구조, 부패의 고리, 인간의 욕망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는 권력 앞에서 쉽게 무너지고, 때로는 동조하게 되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게 된다. 그는 영웅도 아니고, 완전한 악당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의 일부를 닮은 존재다.

이 영화가 많은 관객과 평론가에게 사랑받은 이유는, 시대를 정직하게 반영하면서도 극적인 재미와 감정적 몰입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최민식과 하정우의 연기 대결은 말 그대로 ‘레전드’였으며, 연출, 각본, 미술, 음악까지 그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든 부분이 없다.

무엇보다 <범죄와의 전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나쁜놈들’의 시대를 지나왔는가? 아니면 여전히 그 시대를 살고 있는가? 이 영화는 그 질문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관객에게 들이민다. 그래서 이 영화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게 만드는 강력한 사회 드라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