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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

밀양 - 용서와 구원의 경계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내면

by 돈블로머 2025. 4. 8.

줄거리

이창동 감독의 2007년 작품 <밀양>은 실화에서 영감을 받은 드라마로, 한 여자의 삶과 신념, 그리고 상처를 섬세하게 그려낸 영화입니다. 주인공은 서울에서 남편을 잃고 어린 아들과 함께 남편의 고향인 ‘밀양’이라는 작은 시골 도시로 이사 온 ‘신애’(전도연 분). 그녀는 과거의 아픔을 딛고 새 출발을 꿈꾸지만, 그곳에서도 삶은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을 안깁니다.

신애는 미용실을 열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며 조금씩 지역 사람들과 가까워지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아들이 유괴됩니다. 전화를 통해 아들의 몸값을 요구받은 신애는 충격과 절망에 빠지고, 끝내 아이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유괴범은 바로 신애와 가까이 지내던 피아노 학원의 고등학생 형제 중 형이었습니다.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들을 잃은 신애가 이후 겪는 내면의 혼란, 종교적 믿음과 용서의 문제, 인간으로서의 분노와 절망을 집요하게 탐색합니다.

신애는 깊은 우울증과 슬픔 속에서 기독교에 귀의하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지만, 어느 날 가해자가 신의 뜻으로 자신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믿음은 송두리째 흔들립니다. 영화는 끝내 그녀가 진정한 ‘용서’란 무엇인지, 구원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품은 채 열린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상처와 믿음 사이, 흔들리는 인간의 얼굴

<밀양>은 단순한 슬픔이나 비극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믿음’과 ‘용서’라는 인간 내면의 가장 복잡한 감정의 뿌리를 파고드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신애는 남편의 죽음 이후 새로운 삶을 찾고자 밀양으로 향하지만, 다시 한 번 절망의 나락에 빠집니다. 그 절망이 극에 달했을 때 그녀는 교회를 찾고, 신의 존재 안에서 위안을 얻으려 합니다. 이처럼 신애의 신앙은 단순한 종교적 귀의가 아니라, 그녀가 다시 살아가기 위한 유일한 구원의 끈이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의 이 믿음을 허무하게 무너뜨리는 순간을 보여줍니다. 감옥에 찾아간 신애에게 유괴범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나를 용서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신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사람이 그렇게 쉽게 ‘구원’을 받았다는 말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신애는 자신의 믿음이 가짜였음을, 용서와 구원이 결코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음을 직면하게 됩니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강한 불편함과 질문을 남깁니다. 과연 신의 용서는 인간의 고통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

이처럼 영화 <밀양>은 용서라는 단어가 결코 아름답게 포장될 수 없는, 실존적 고통과 함께 작용한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다룹니다. 단순히 ‘미안하다’, ‘용서했다’는 말로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 인간의 감정의 복잡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점이 이 작품의 깊이와 가치를 더합니다.

 

전도연의 연기, 감정을 넘은 실존의 연기

영화 <밀양>의 또 다른 중심에는 배우 전도연의 압도적인 연기가 있습니다. 그녀는 이 작품으로 2007년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는 단순한 연기력이 아니라 ‘삶과 감정을 체현한 예술’에 가까운 수준이었습니다. 전도연은 영화 내내 감정을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관객은 그녀가 연기하는 신애가 진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예컨대 아들을 잃은 후, 무너지는 감정선에서 신앙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다시 절망에 빠지는 모든 감정 곡선을 그녀는 자연스럽게 표현합니다. 특히 교회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울부짖는 장면이나, 감옥에서 범인을 만난 뒤 망연자실하게 걷는 모습은 인간의 감정을 설명이 아닌 ‘공감’으로 전달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연기는 ‘배우가 연기했다’는 생각을 지우고, 그저 ‘신애’라는 인물이 거기 있는 것처럼 만들죠.

이창동 감독은 배우 전도연에게 무게 중심을 두고 영화를 이끌어가며, 그녀의 감정이 극 전체를 구성하게 합니다. 그래서 <밀양>은 대사보다는 표정, 말보다는 눈빛과 숨소리가 더욱 깊이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이처럼 <밀양>은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생생한 감정이 담긴 또 하나의 '실존 다큐멘터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종교, 용서, 구원: 불편한 진실과 철학적 질문

<밀양>이 관객에게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감성 영화가 아니라,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결코 답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만을 남깁니다. 과연 용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신은 누구를 먼저 구원하는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먼저 구원받는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많은 기독교 영화들이 '용서'를 아름답고 숭고한 가치로 포장하지만, <밀양>은 그 반대편에서, '용서받지 못한 자의 분노'를 통해 신의 논리조차 흔들리게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관객은 불편해지고, 동시에 깊은 사유에 빠집니다. 이 영화는 종교를 찬양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종교라는 체계 안에서도 해결되지 않는 인간 본연의 감정과 고통이 존재함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이창동 감독은 구원의 아이러니를 세밀하게 풀어냅니다. 신애는 끝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내면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녀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인간적이며 진실한 것이라 말합니다. 이처럼 <밀양>은 ‘용서’라는 단어조차 무색하게 만들 만큼 무거운 질문을 던지고, 그 대답을 관객 각자의 마음에 남겨둡니다.

 

총평: 아름답지만 가장 불편한 영화, 그 불편함이 주는 힘

<밀양>은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개인적인 비극을 통해, 인간 내면의 깊은 상처와 믿음, 그리고 용서에 대해 묻는 강력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결코 쉬운 감정을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만들고, 마음속 깊은 곳의 감정을 건드립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야말로,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본질입니다.

전도연의 놀라운 연기력과 이창동 감독의 치밀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철학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 구조는 <밀양>을 단순한 드라마 영화에서 '사유하는 영화'로 격상시킵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고 나서도 쉽게 잊을 수 없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가 깊어지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용서하지 못한 자의 이야기’이자, ‘구원받지 못한 자의 마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밀양>은 누군가에게는 종교적 질문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과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탐색일 수 있습니다.